“자, 관우. 저의 목을 취하세요.”

“자, 관우. 저의 목을 취하세요.”
관우는 당황스러웠다. 눈앞에 놓여진 광경에 그는 상념에 빠졌다. 정말 이 자가 그 천하의 조조란 말인가? 자신의 아비가 죽었다한들 죄없는 백성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시체로 강을 메워버린 천하의 살인귀. 차마 입에도 못담을 잔혹한 행위를 행한 악랄하기 짝이 없는 그 조조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선 그저 가련한 소녀로만 보였기에….
“나, 천하의 조조가 영위해온 삶은 결국 여기까지인가봐요.”
가엽게 떨리는 조막만한 두 손이 관우의 창 끝을 꾹 쥐었다. 이제 모든걸 포기했다는듯 조조는 턱을 치켜들고 목덜미에 창 끝을 갖다대었다.
서늘한 한기에 읏, 하고 저도 모르게 나오는 신음과 함께 조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촉촉해진 속눈썹 사이로 어느새 뺨을 적신 눈물 한방울이 턱 끝을 타고 똑 떨어졌다.
“비록 비원을 다 이루지 못한 채 여기서 최후를 맞이하나, 당신에게 죽을 수 있다면….”
조조는 웃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한 남자를 일렁이는 두 눈으로 응시했다. X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애틋한 시선이. 그 애달픈 눈웃음이. 관우에게 그녀를 숙적이 아닌 그저 가련한 소녀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그건 필시 나, 조조가 맞이할 수 있는 모든 죽음 중에서 가장 행복한 죽음이겠죠.”
이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듯, 조조는 창 끝을 쥔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관우.”
그러나 세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 아련한 미소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했어요.”

관우의 맹세를 꺼뜨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