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이라는 말을 알고 있나?”

이 세상 그 자체를 지배하여  절대적인 마신의 힘이다.

오티누스는 이 리스크를 자신의 영장 
로 확률을 똑바로 정리하여 성공의 가능성을 확립하고 실패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성공의 100%를 얻었다. 그 직후 완성된 마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완전히 파괴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창조하고 다시금 다른 형태의 세상으로 재창조하는 상식을 벗어난 행위도 가능하다. 그리고 단순히 세상을 뒤엎는 것 이외에도 1 + 1 = 2 라는 상식을 3으로 수정하는 절대 바꿀 수 없는 법칙의 개변, 은하와 은하를 충돌시켜 상대를 압살하는 공격, 확정된 운명까지 뒤바꾸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간을 되돌리면 그만이라는 둥 신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행위들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 되돌리기나 확정된 운명 고치기에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세계를 수채화라고 가정할 때, 오티누스는 그 위에 원하는 대로 물감을 덧칠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덧칠한 그림은 아무리 원래의 그림과 99.9999% 비슷하다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과 달리 마신인 오티누스 입장에서는 0.0001%의 위화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100% 완벽한 그림이 아니기에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바꾸기 전 최초의 원래 세계’를 복구시키는 것은 오티누스에게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오티누스는 ‘세계’라는 캔버스 위에 ‘위상’이라는 물감을 덧칠하는 화가와 같다. 그리고 이매진 브레이커는 이미 덧씌워진 물감을 지우는 파레트 나이프라고 볼 수 있겠다. 즉 오티누스는 어디까지나 물감을 칠하는 입장으로, 이미 칠해진 물감 위에 하얀 물감을 칠해서 지운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에 불과하고 이매진 브레이커는 이미 덧씌워진 물감을 긁어 떼어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오티누스가 ‘파괴’를 행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파괴’라는 행위를 ‘창조’하는 것이 되는 것.

오티누스는 ‘변화를 만드는 것’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변화를 완전히 지워내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시간을 3분 되돌리는 행위를 시간관련 능력자라면 3분을 되돌리거나 하면 그만이지만, 오티누스를 포함한 마신은 3분전의 세계를 완전하게 스스로 본인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신을 제외한 다른이가 보기에 문제가 전혀 없다해도, 그것들을 만들어낸 창조주인 마신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군더더기라도 보일 수 있기에 스스로가 불만족 하는 것.

따라서 오티누스는 수채화 위를 계속해서 새롭게 덧칠하거나 새로 칠하기 방금 전으로 되돌리는 것 까지는 가능해도, 바꾸기 이전 가장 최초의 상태로 복원할 정도의 시간 되돌리기나 운명 고치기는 불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이매진 브레이커와 같이 보관소 같은 것이 존재할 경우 마신은 그 지침대로 재구성하면 되고, 이미 오티누스는 무한한 가능성의 절반만을 얻은 불완전한 마신의 상태에서 이를 완벽하게 행사해 카미조의 원래 세계를 복구해냈다.
따라서 이는 마신의 능력이 불확실하다고 하기보다는 마신이 가진 능력이 창조를 기반으로 구현된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다.

애시당초 금서목록의 세계관은 세계라는 거대한 틀 위에 세계를 구성하는 조각인 위상이 수천억 이상 모여서 무한에 가깝게 형성된 병행우주를 말한다. 
, 마신은 이러한 세계 그 자체의 구성 요소인 ‘위상’을 창조, 파괴, 조작할 수 있으니 마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말 그대로 다중 우주급 현실 조작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