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학교나 그렇겠지만 쉬는시간의 학교는 특히나 복도가 붐빈다. 그런데 우리 반의 위치는 동서남북 타반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 옆 동으로 가는 통로까지 있어서 매우 혼잡하다. 그래서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위치인데
교과서를 가지러 가야 해서 사물함 쪽으로 갔다.
각 층의 중앙쯤에 사물함들이 모여 있고 자판기와 탈의실이 있는 공간이 있어서 그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당연히 사람이 매우 많아 혼잡했고 지나가려면 비집고 들어가야만 했다.
겨우 틈을 발견해서 그 틈으로 지나가려는데 마침 왼편에 두세 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 가는 중이었고 그 무리는 북동쪽으로 움직이는 중이어서 결과적으로 살짝 왼팔이 스쳤다.
별일 아니었기에 난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뒷편에서 들리는 소리…
“아 나 스치는 거 너무 싫어…”
가히 충격이었다. 곱씹으면서 황당한 기색을 숨기고 뒤도 돌아X 않고 그저 앞으로 갔다. 너무나 어이없고, 화가 났다. 하지만 너무나 어이가 없고 정신없는 틈이라 그냥 지나쳐 왔으니 인상착의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흰색 바람막이만이 기억날 뿐…
팔 스친 것 때문에 경멸스런 목소리로 저런 말을 대놓고 들어야 했다는 게 너무나 분했다. 사람이 없는 복도를 일부러 스치고자 옆으로 지나간 것도 아닌데 대놓고 표출해야 했을까?
반에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친구들도 어이없어 했다. 한 명은 누군지 찾아내겠다며 교실까지 나섰다…
아마 평생 기억에 강하게 남을 것 같다. 멀쩡한 사람 죄의식 들게 만들고 준 치한으로 만들어버린 그 발언, 정말 왜 이 사회 남녀 갈등이 심해졌는가가 단박에 이해 가능했다.
치한은 어쩌면 그녀들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