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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퇴직금을 요구하다가 실패한 이야기 – 비공식 고용 관계의 경우

내가 편의점에서 일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 매장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와이프 명의였고, 내가 일하던 곳도 그 쪽이었다.

근무 시간은 명확하게 관리되지 않았지만, 출퇴근 카드도 찍었고, 급여도 정해진 날짜에 받았다.

분명히 누가 봐도 ‘고용 관계’가 맞았다.

 

매장은 바빴다. 사람이 빠지거나 손이 모자랄 때면 자연스럽게 나는 남편 쪽 매장으로 넘어가곤 했다.

뭐, 따로 계약서를 새로 쓰거나 정식으로 지시가 내려온 건 아니었지만,

서로가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도와줬고, 그쪽은 고마워했다.

그리고 일한 시간에 대한 급여는 늘 내가 원래 일하던 ‘와이프 명의’ 쪽 매장에서 나왔다.

그러다 1월쯤, 코로나가 확 터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매장 하나는 확연히 손님이 줄었고, 인건비 부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 쪽 매장에서 일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집안이고, 급여도 동일하게 들어올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만두고 퇴직금을 요청했을 때 발생했다.

내가 요청한 건 아주 기본적인 거였다.

법정 근무 시간 이상 일했고, 출퇴근 기록도 있고, 급여도 받은 만큼

자연스럽게 퇴직금이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내가 일했던 그 ‘남편 쪽 매장’에서는 주 15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황당했던 건, 그쪽으로 일하라고 보낸 건 너희들인데,

왜 갑자기 다른 가게라고 선을 긋느냐는 거였다.

나는 이야기했다.

나는 근로계약서를 오직 ‘와이프 명의 매장’에서만 썼고,

그 이후에도 모든 급여는 그 매장 명의로 받았다.

당연히 모든 근무는 그 계약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말을 바꿨다.

두 가게는 부부가 운영하더라도 사업자 등록은 엄연히 다르고,

남편 쪽 매장에서 일한 시간은 다른 사업장에서의 근로로 간주되며,

그 부분은 퇴직금 산정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청에 민원을 넣었다.

상담도 받고, 기록도 정리해서 보냈다.

출퇴근 카드, 급여 명세서, 모든 걸 정리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쪽 손을 들어줬다.

노동청에서 나온 결론은 이랬다.

부부라도 각기 다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

각 매장은 법적으로 별개의 고용주로 간주되며,

근로계약서가 없는 쪽에서 일한 시간은 퇴직금 산정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그날 이후, 허탈함만 남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나’, ‘사장님 말만 믿은 게 실수였나’

수없이 되뇌이며, 내가 기록한 카카오톡 메시지, 문자, 근무표를 다시 들여다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서’는 없었다.

실제 일한 시간, 실제 받은 돈, 실제 했던 대화들보다도

결국 문서와 기준과 구조가 없으면, 노동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걸

그제야 체감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편의점 알바, 특히 개인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가게는 조심하라고.

계약서 없으면, 모든 일은 말뿐이라고.

가능하면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직영점에서 일하라고.

거긴 적어도 책임질 시스템은 있으니까.

이 글이 누군가의 선택을 조금이라도 신중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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