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다카키는 오랜 지병이었던 발터로 쓰러졌다.
향년 62세였고 다카키 제과의 과자가 또 한번의 신제품 발매를 위해 유신헌법을 통과한 지 약 7년 만이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 그의 장례 행렬에는 한 무리의 제빵사들도 그 뒤를 잇고 있었다.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빵 먹기를 장려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카키! 그는 우리가 과자 주권을 잃었던 화과자 강점기 시절부터 해방 이후 한식, 양식의 대립에 이어, 연양갱 독재시절과 혼분식 장려운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 온 몸을 다 던져 굶주림 극복을 위해 싸웠다
신춘호(농심 사장) : 난 오랫동안 자네를 지켜봐온 사람일세. 자네는 자네답게 살았어. 조선의 제과 황제답게 말이야. 입천장이 까지긴 했지만, 늘 바삭하고 맛있게 살았어.
나름대로 자네의 제과실력을 가지고 자네의 과자를 치열하고 열심히 구웠다는 얘기야. 뭐랄까… 벌집핏자라고나 할까?
벌집핏자! 그렇다. 그것은 바로 그가 몸 바쳐 만들어낸 이 나라 과자역사의 또 다른 한 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