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인가….’

창밖을 본 순간 느낀 기시감의 정체는 곧바로 알았다.

일반적으로 데자뷰는 뇌의 착각이나 오해인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이건 아마 그런 종류의 감각이 아닐 것이다.

분명 작년도 재작년도, 또 그 이전에도 몇 번이고… 나는 이런 식으로 첫 눈을 맞이했을테니까.

철야를 마친 신체에서 느껴지는 나른한 피로감과 달성감.

침대 위의 테블릿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엔딩곡.

창문에 손을 대니 전해지는 기분좋은 냉기.

반대쪽 손에 든 코코아의 따스한 온기.

1년에 단 한번만 찾아오는 기적같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와 감각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나는 몇 번이나 이런 식으로 첫 눈을 보며 웃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느긋하게 겨울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한다.

당연한 것처럼만 느껴지는 지금의 이 일상도, 감정도, 언제 어떤 식으로 갑작스레 변화해 버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내 의지로든, 타인의 의지로든, 혹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든.

그렇기에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 현재를 지킬 수는 없어도 자신의 과거는 비교적 간단히 지킬 수 있으니까.

지나간 순간들을 가끔씩 떠올리며 기뻐하고 슬퍼해주는 것 만으로, 삶은 덧없는 찰나의 연속에서 유일무이한 생의 궤적으로 변모한다.

그것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계에 대해, 무력한 개인이 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저항일 것이다.

다시금 침대에 누워 테블릿 화면의 엔딩 크래딧을 바라보며,

나는 첫 눈이 내리던 날의 여러 추억들을 떠올렸다.

두근거리는 기억.

즐거운 기억.

슬픈 기억.

애달픈 기억.

행복한 기억.

전부가 전부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달달한 코코아에는 조금 쓴 과자가 잘 어울리는 법이다.

올해 겨울에는 어떤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겪게 될까.

첫 눈이 바래다 줄 인연에 대해, 아직 만나지 못한 소녀들에 대해 조금 형편좋은 상상을 하며,

나는 다시 커튼을 치고 잘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