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와서 쓰는 퐁퐁단 수필

1나에게 결혼이란 유리로 된 방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였다방의 바닥은 내가 쌓아올린 돈과 명예로 만들었고천장은 사랑으로 덮었고 방의 외벽과 기둥은 천년만년을 함께하기로 맹세한이와의 섹스로 쌓아올렸다결혼 5년차에 들어선 지금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의 섹스는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마치 나가기 싫은 회사 사람들과의 억지 등산 모임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을 다들 그렇듯 어떻게 사랑이 천년만년 활활 불타겠는가 숯과 같이 은은한 사랑을 하면 된다고 믿고 있었기에 시시콜콜한 말장난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설거지론이라는 글을 본 뒤로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약을 먹은 것처럼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애써 외면해왔던 것들이 피부로 와닿았고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섹스가 무너진 지금 내 머리 위의 유리천장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너무나도 투명한 유리천장이라 언제나 그랬듯 눈으로 보이지 않았다나는 너무나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니 확인해야만 했다 나는 용기를 내 힘껏 뛰어올랐고 힘껏 손을뻗었다손에 닿는 건 유리천장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이었다나는 바닥에 고꾸라졌고 유리바닥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유리바닥은 깨졌고 나는 추락하기 시작했다나는 내 인생에 사랑이란 없음을 깨달았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이혼이라는 이름의 낙하산을 펼쳐야 한다는것 또한 깨달았다낙하산을 펼치려는 순간 수많은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아직 걷지도 못하는 딸의 울음소리ㅡ어머니의 울음소리ㅡ아버지의 한숨ㅡ직장 동료의 수군거림ㅡ친구들의 비웃음ㅡ하지만 이것들이 낙하산을 펼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낙하산을 펼치게 막은 것은 나 자신의 작은 속삭임들이었다’다른 사람에게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나에게 진짜 사랑이 찾아올까?’나는 이 속삭임들에 대답할 수 없었고 이내 가짜행복이라는 이름의 바닥으로 처박혔다다리는 박살이나 뼈가 보였고 갈비뼈가 심장 깊숙한 곳을 찔러 만들어낸 구멍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2집을 빠져 나와 회사로 향한다어제와 같은 아침 하지만 다른 아침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병아리들과 병든 닭들이 보인다병든 닭들은 하나같이 휴대전화에 눈이 고정되어 있고 병아리들끼리 삐약 거리며 수다를 떤다나는 시동을 걸었고 도로로 나섰다괜히 백미러로 눈이 갔다셔틀버스가 모퉁이로 돌아설 때까지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엄마는 단한명백미러 시야각이 좋지 못해 다른 엄마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그 많던 엄마들은 어디 갔는가 자식들은 안중에도 없고 브런치 약속을위해 불이나게 내 뺀것은 아닌가? 모든것들이 불편해진다아파트 앞 헬스장을 지난다몸매가 다 드러나게 입고 운동을 하기위해 헬스장으로 향하는 아가씨가 보인다자기 관리의 성과를 박수 받기위해 몸매가 드러나게 입었다는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고 본인의 쾌락을위한 먹잇감을 낚아 올리기 위해미끼를 던진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딸이 크면 저렇게 자기관리를 열심히 해라고 조언해 주려 했던 지난 날들이 생각난다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회사로 들어선다익숙한 얼굴과 표정들이들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 이들이 찾고 있는 행복은 무엇일까모든것이 퐁퐁 거품에 가리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