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X 친구들!
오늘은 2차세계대전에 참가한 한국인을 알아보려고 해.
응? 2차세계대전이 뭐냐고?
아..맞다..X 친구들은 앰생이라 이런것도 모를려나..
괜찮아! 내가 알려줄게!
제2차 세계 대전(영어: Second World War 또는 World War II)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2,194일 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이였고 치욕스러운 전쟁이었다.
통상적으로 전쟁이 시작된 때는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다스리는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7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한 때로 본다.
그러나, 또 다른 편에서는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의 중화민국 침략, 1939년 3월 나치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일본 제국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에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사실상 끝이 났으며, 일본 제국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9월 2일에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 결과로 동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지역들이 독립하거나 모국으로 복귀하고, 그 외에도 여러 제국들의 식민지가 독립하게 되었다.
이라고 해!
어쨋든 우리가 알아볼건 이게 메인이 아니니까 이만 본론으로 들어갈게! 이 사진을 봐줘.
편지의 내용은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불은 군대에 편입됐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장벽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 해안에서”
이 사람은 ‘양경종’이라는 사람인데, 어째서 독일군의 편으로 아무 관련도 없는 한국인이 있는지 궁금하지?
양경종은 일제강점기였던 시절 일본군에 입대하여 장고봉 이라는 한반도와 러시아(당시 소련)이 맞대어 있는 전선으로 가게되었어.
그 곳에서 소련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치뤘던 할힌골 전투가 있었는데 양경종이 속한 일본군이 패배하여 소련군의 포로가 됐었어.
그 이후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시작되자 양경종은 포로에서 소련군으로 징집되어 독일과 전투중인 전선으로 투입되었어.
하지만 또 다시 독일군과 전투 중 소련군이 패배하여 독일군에 의해 포로가 됐다고 해.
그리고 그는 다시 독일군에 의해 징집되었는데..
동방대대는 독일군이 주로 소련군의 전쟁포로를 끌어모아 만들어졌는데 우크라이나나 캅카스 같은 소련 치하의 지역에서 온 자들로 구성됐다고 해.
양경종은 이 부대에 소속되어 당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프랑스를 통한 상륙을 준비하던 대서양 방어를 위해 서부 전선으로 가게 되었어.
그리고 1944년 연합군이 마침내 프랑스의 노르망디 라는 곳에서 상륙을 시도하게 돼.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X들도 알지? 그러니까 이게 뭔지는 생략하고.
독일군이 상륙을 저지하지 못하고 패배해서 양경종은 미군의 포로가 되었어.
저 사진은 미군이 독일군 포로를 분류하던 중에 찍힌 사진이라고 해.
이후 독일군 포로인 양경종은 1947년 미군에 의해 포로에서 풀려났다. 그는 미국 시민이되어 미국 일리노이 주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살았다.
라는게 현재 가장 일관성 있는 추측이야..아쉽게도 현재 이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는 물론 생사도 모른다고 해..우리가 잘 아는 SBS에서도 취재를 실패했다나 뭐라나..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