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흑인 나치에 대한 사실.

1912년 출생지 미국 뉴콜라도 주 흑인마을에서 태어난 “치프 햄프턴” 은 국내에서의 인종차별의 시달려 19살때 독일로 유학을 가게되고 년동안 뮌헨 대학에서 공부하게된다. 그런데 33년 히틀러의 정권 장악으로 국외추방과 혼란이 이뤄지고 있어서 거의 모든 유색인종들은 나치를 꺼려했다. 하지만 햄프턴은 미국으로 돌아가는것보다 독일에 남는것을 택한다. 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흑인 올림픽 선수가 히틀러가 따뜻하게 대우를 하는모습과 모국인 미국으로 돌아간 흑인 선수들에 대한 차가운 대우가 햄프턴의 마음을 더 굳게 각인시켰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과 독일어. 그리고 독일의 현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게되면서 나치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40년 비밀리에 히틀러가 햄프턴을 초청하여 이미 항복한 프랑스의 식민지군을 모아서 흑인들로만 구성된 부대 아프리칸코만도 (afrikankomando) 를창설하게된다. 햄프턴은 이전에도 나치에 우호적이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전쟁 초기 대대로만 구성되었던 햄프턴의 부대는 점점 규모가 커지며 무슬림들과 여러 소수인종으로 이뤄진 짬뽕사단이 되었다. 이들은 독소전쟁에도 파견됬는데. 바르바로사 작전 중기 소련 점령지 주민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투입되었지만. 소련 주민들은 이를 보며 의아해했는데 무려 최강의 독일군에 유색인종이 있는것이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벌지 전투등 수많은 전투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독일 군부는 군의 위상을 위해 이 짬뽕부대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이후 햄프턴은 45년 종전이후 연합군에게 붙잡히게 되는데 무려 그가 입고있던 제복은 중장급 이였다. 친위대도 아닌 국방군 장군이 흑인이였다는것을 연합군도 이를 알고 의아해하고는 철저히 이를 기밀에 부치며 햄프턴은 미군 군사법원이 아닌 지방법원에서 비밀리로 형을 받으며 반란혐와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으로 47년 처형당했다. 이후 이 모든것은 비밀로 감춰줬지만 69년 한 2차대전 참전용사가 이 부대의 존재를 밝히게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나서야 이는 공개적으로 올라오지 못했고 지금은 사전에만 올라온 정도로 알려져있다. 최후의 나치 아니 최후의 흑인 장군이였던 그는 “미국”에서의 흑인과 악인중에서 악인이 되는것을 택했다.  – Wikipedea Hidden Fa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