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는 독도가 아니다

여기서 이규원은 죽도랑 관음도만 봤다고 말했다.
이규원의 검찰일기 中

 

<5월 4일> 울릉도의 최고봉, 성인봉에 오르다.

4일에는 산신당에 기도를 올린 후 등나무, 칡덩쿨을 부여 잡고 동변 최고봉에 올랐는데 성인봉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쪽을 바라보니 바다와 산이 아득할 뿐이요 다른 한 점의 섬도 없고 다만 열넷의 봉우리들이 우뚝하게 줄지어 서서 나리동 한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이 보이니 과연 하늘이 감추어 둔 별천지였습니다

 

–> 독도 발견 못함

 

 

5월 9일

또 하나의 포구가 있었으니 이름은 선판구미(船板邱尾), 남쪽으로 바다 가운데 두개의 작은 섬이 있으니 모양이 누워 있는 소와 같으며 좌우로 돌면서 서로 안을 듯한 형태인데, 하나는 죽도[竹島, 대섬]라 하고 하나는 도항[島項, 관음도(깍새섬)]이라 하는데, 다만 대나무가 무더기로 있을 뿐이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육지에 내려 대나무가 있는 바위 아래에 막을 치고 유숙하였습니다.

 

 

–> 5월 9일에 발견한 두 섬은 죽도와 관음도

 

 

5월13일

청명한 날이면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봄에 일천리를 바라볼 수 있지만, 울릉도 외에 다시 한 주먹의 돌이나 한 움큼의 흙(다른 섬)도 없습니다. 우산도를 울릉도라 칭하는 것은 마치 탐라를 제주도라고 칭하는 것과 같습니다.

 

–> 독도를 결국 발견 못하고 우산도를 울릉도로 확인하면서 돌아옴

 

칙령 공표 직전 우용정의 울릉도 탐사 도면

이게 석도에 대한 유일한 자료다 

  

석도가 죽도랑 같이 울릉도의 북면에 있다고 되어있다. 

  

이규원 : 죽도 관음도 

  

우용정 지도 : 죽도 관음도 

  

칙령 41호 : 죽도 석도 

  

석도가 죽도와 같이 울릉도 북면에 있다. 

  

울릉도 북쪽에 있는 섬이 죽도랑 석도 말고 또 있나? 

  

결국 대한제국 칙령에 나온 석도는 독도가 될 수 없다는 말 

  

칙령 41호 청의서를 보면 울도군은 세로 32km 가로 20km 라고 되어있다. 울릉도 북쪽으로 있는 섬은 죽도랑 관음도

수토관 기록만 봐도 하나의 대상으로 비정된다면 관음도가 명백하고 
애초에 동남쪽에 있는 독도가 울릉도 북면에 속할 리가 없다 

  

무슨 거긴 사람이 없어서 군청이 있는 북면에 소속시켰다고 선동질인지

1955년 한국정부가 발간한 독도문제개론

울릉도의 행정 구획에 편입된 명시된 공적기록이 없다 

 

심흥택 보고서에 대한제국 정부의 답변

대한제국 스스로 독도는 우리땅이 아니라 함

 

정식적으로 편입한적도 없으니까

1. 이규원과 우용정은 울릉도 조사하면서 독도 발견 못함

 

2. 이 상태에서 칙령 청의서가 작성되면서 울릉도 주변 크기를 산정하는데 여기에 독도 포함 못함

 

3. 심흥택은 독도에 대해 보고했는데 정부가 답변한건 울릉도 죽도 석도

 

4. 석도는 죽도와 같이 울릉도 북면에 속한다라는 기록

 

왜 저걸 뒤집을 자료를 가져오지도 못하는 놈들이

망상을 증거마냥 굴면서 정신승리질 하는거지?

결론은 석도는 독도가 아니다.

황성신문을 보자면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후 울릉군의 관할구역에 독도는 포함되지 않는다. 관음도 혹은 울릉도 밑의 5개 바위의 군체

대한제국 고시가 관보에 기재된 것은 1900년의 일이다. 그리고, 1906년의 심흥택 보고서에서는 본국 ‘독도’라는 표기를 이용했고, 또 같은 시기의 횡성신문의 울릉도 질의에서는 ‘석도’라는 표기를 이용한다. 독도와 석도라는 명칭은 동시대에 각각 쓰였는 데, 만약 동일한 섬이라면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석도는 독도라는 기록이나 표현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 허나, 석도가 독도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 별개의 섬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편입을 위해서는 정확한 경위도를 기록했어야 한다. 허나, 경위도를 기록하지 않았다.

또한, 석도는 울릉도의 행정 구획에 편입되었다고 하는 데, 독도는 울릉도의 행정 구획에 편입된 적이 없다.

고종 칙령에 나오는 석도는 관음도임. 울릉면을 남면 북면 (서면)으로 나누었을 때 북면에 석도가 들어가있고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보려 했으나 1920년대로 이어진 지리지에 북면의 석도 = 관음도로 명칭과 면적이 정확하게 나옴. 현지에서 석도라는 명칭이 있었어도 이것을 중앙정부에서 관음도로 비정했다
고종 칙령도 북도 남도와 후에 지리지만 봐도 석도=관음도

조선에서 내미는 모든 증거는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를 가르킴(이사부, 안용복 등) 조선에서 그린 지도중 독도가 포함된 지도는 한 건도 없음(죽도 송도는 울릉도 주변섬 이름) 지도 뿐만 아니라 독도는 한국 역사 기록에서 조차 없음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 주변의 석도 관음도

대한제국도 인정한 양코도(독도)는 일본에서 얻다